세상에서 가장 느린 사용법
누구나 처음 배울 때는 느리고, 배우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배움의 속도는 제각각이고요. 디지털이 우리의 삶을 편하게 만들었지만, 누군가에겐 디지털도 배워야 하는 영역일 수 있어요. 인지 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이나 시니어는 좀 더 느리고,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고요.
일상에서 매일 쓰는 카톡을 더 차근차근 알려주는 ‘더 쉬운 카톡설명서'가 탄생한 이유예요. 지난 1년간 ‘더 쉬운 카톡설명서’를 함께 만든 카카오 서비스마케팅팀의 린지(박은지)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글 콘텐츠를 만드는 피치마켓의 김예은 님을 만났습니다.
카톡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어떤 업무를 담당하나요?
린지: 안녕하세요, 카카오 서비스마케팅팀 린지입니다. 카카오톡부터 카카오 내에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사용자분들께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신규 서비스 런칭이나 업데이트 이슈가 있을 때, 기획 단계에 참여해 네이밍하는 것부터, 어떤 콘셉트로 서비스를 알릴지 마케팅 전략을 짜고, 광고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해요. ‘더 쉬운 카톡설명서’는 저희 팀에서 전반적인 기획을 담당했어요.
김예은: 안녕하세요. 피치마켓에서 쉬운 글로 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김예은입니다. 피치마켓은 ‘정보 평등'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시작한 비영리 사회적 기업이에요.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시니어 등 배움에 어려움이 있는 ‘느린 학습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 콘텐츠를 만들고 교육하는 일을 해요. ‘더 쉬운 카톡설명서’에서는 사용자 의견을 듣고 콘텐츠 주제를 기획해 쉬운 글로 작성하는 일을 했어요.
🎙 ‘느린 학습자'라는 단어가 인상적인데요. 어떤 분들을 말하나요?
김예은: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를 ‘쉬운 글이 필요한 누구나'로 폭넓게 정의하고 있어요. 배움과 정보 습득이 어려워도 특성과 환경을 고려한 지원이 있다면 속도는 느리더라도 누구나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요. 발달장애인이나 시니어일 수도 있고,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카톡이 익숙지 않은 외국인처럼, 어떤 영역에 낯선 초보일 수도 있어요.
"채팅방 만들기나 사진 보내기 등
너무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기능도
설명이 필요한 분들이 있더라고요.
카톡을 사용하는 모두가 어려움 없이
쉽게 쓸 수 있게 ‘더 쉬운 카톡설명서'를 만들게 됐어요."
🎙 지난 5월 ‘더 쉬운 카톡설명서'가 오픈했어요. ‘카톡설명서'가 나온 지 1년 만의 일인데요. ‘더 쉬운 카톡설명서'를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린지: 카카오톡에 정말 많은 기능이 있고, 매달 새로 나오거나 업데이트되는 기능이 있어요. 기존 기능은 물론이고 새로운 업데이트 기능을 쉽고 빠르게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작년에 ‘카톡설명서'를 만들었는데요. 채팅방 만들기나 사진 보내기 등 오히려 너무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기능도 설명이 필요한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카톡을 사용하는 모두가 소외되지 않고, 어려움 없이 쉽게 쓸 수 있게 ‘더 쉬운 카톡설명서'를 만들게 됐어요. 발달장애인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쉬운 글을 쓰는 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더라고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 경험이 있고, 교육까지 하고 계신 피치마켓을 알게 되어 협업하게 됐어요.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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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쉬운 카톡설명서’의 주요 기능과 특징이 궁금해요. 기존 ‘카톡설명서’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린지: 카톡설명서는 새로운 기능을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면, ‘더 쉬운 카톡설명서'는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쉽게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가장 큰 특징을 말하자면, 쉬운 글과 큰 그림이죠. 첫 화면에서는 많은 기능을 한 번에 보여주는 게 아니라, 3개 메뉴로 단순화했어요. 각자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요. 카톡의 다양한 기능 용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용어사전을 따로 만들었고요. 그리고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읽기 쉽게 돕는 도구를 두어,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볼 수 있고, 고대비 기능이 있어 저시력자분들도 편하게 보실 수 있게 했어요.
김예은: 단순히 기능 사용법을 알려주면, 발달장애인은 어떤 상황에서 써야 할 지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일상에서 있을 만한 상황을 이야기로 만들어,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했어요. ‘투표하기' 기능의 사용법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정할 때 시간이나 장소를 쉽게 정할 수 있는 상황을 같이 얘기하는 식으로요.
"단순히 기능 사용법만 알려주면,
발달장애인은 어떤 상황에서 써야 할 지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일상의 상황을 이야기로 만들어,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했어요."
🎙 구체적으로 콘텐츠 기획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주제나 기능은 어떻게 선정했나요?
린지: 우선 내부적으로 논의해서 대략적인 구성을 잡고, 피치마켓에서 잘 알고 계신 발달장애인이나 느린 학습자들의 상황이나 불편함을 바탕으로 1차 주제를 기획해 주셨어요. 이후 3차례의 사용자 조사를 거치면서 보완해 갔어요. 특수 교사나 보호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어느 정도 구체적인 콘텐츠 방향성이 나온 뒤에는 발달장애인 그룹을 만나 실제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도 확인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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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교사나 보호자, 그리고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땠나요?
김예은 : 카톡의 기능 사용법 외에 대화 예절이나 안전한 사용 방법 등 주의 사항에 대한 니즈도 있었어요. 새벽 늦게 카톡을 보낸다든가, 카톡을 한마디씩 지나치게 끊어 여러번 보내 알림이 계속 울리게 한다든가, 불쑥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묻거나 혹은 본인의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사례들이 있더라고요. 일상에서 카톡을 쓸 때의 어려움이나, 실제 카톡이 일상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린지: 인터뷰 후에 소감을 나누는데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보호자 분께서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노력해 주시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시더라고요. 책임감을 느끼고 정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크고 잘 보이는 구조로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이게 정말 쉬운 걸까? 더 쉽게 할 수는 없을까?’
정말 많이 고민한 거 같아요."
🎙 그 외 어떤 부분을 더 신경 썼나요?
린지: ‘더 쉬운 카톡설명서'가 필요한 분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요. 불필요한 요소를 다 걷어내고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크고 잘 보이는 구조로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조작의 어려움이 없도록 버튼 영역을 크게 잡았고, 클릭해야 하는 부분은 알기 쉽게 아이콘이 아닌 텍스트를 모두 넣었어요.
김예은 : 인지 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들은 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워 문장을 짧게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분량이 길어지고 모바일에서는 가독성이 떨어지기도 하거든요. 내용이 쉬우면서도 모바일 화면에서 보기에도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린지: ‘이게 정말 쉬운 걸까? 더 쉽게 할 수는 없을까?’에 대한 부분을 정말 많이 고민한 거 같아요.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희는 당연하게 쓰고 있던 단어도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아주 많더라고요. 알려드리고 싶은 기능은 많은데 한 번에 다 콘텐츠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쉽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면 영상이 될 수도, 들고 다니는 책 형태가 될 수도 있는데 여기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해나가야 할 부분이겠죠.
김예은: 주로 책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왔는데, 이번에 온라인에 보일 콘텐츠를 만드는 게 저희에겐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모바일 화면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정보를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느려서 좋아!
🎙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나요?
린지: 부모님이 카톡을 어떻게 쓰고 계시는지 관찰하게 됐어요. 팀원들도 전부 다요. 부모님이 톡을 어떻게 쓰는지, 이 기능은 아는지, 뭐가 어려운지 여쭤보고 알려드렸어요. 제가 카카오를 다니지만 별로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번 기회에 계정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2단계 인증도 해드렸어요. (웃음)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도 디지털 약자일 수 있어요. 우리 가족 중에 누구나, 한두 명은 디지털 약자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김예은: 저도 잘 알지 못하는 카톡의 기능을 많이 발견하게 돼서 앞으로도 유용하게 쓸 것 같아요. (웃음) 바쁘게 일할 때 잘 모르고 넘어갔는데, 실제로 발달장애인이나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 있겠구나’ 새삼 깨닫게 됐어요.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도
디지털 약자일 수 있어요.
우리 가족 중에 누구나, 한두 명은
디지털 약자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 ‘더 쉬운 카톡설명서'가 어떤 사이트가 됐으면 하시나요?
린지: 뻔한 말이지만 ‘백과사전'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요.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부모님께서 카톡 사용법을 자녀에게 물어보시는 일이 많을 텐데, 이럴 때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가 되면 좋겠어요. 카카오톡 더보기 하단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으니 카톡 하다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찾아주셨으면 해요.
김예은: 디지털 약자나 느린 학습자분들이 “맞아, 이런 상황에서 이 기능을 쓸 수 있지!” 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카톡 사용법을 알고 일상에서 잘 쓰실 수 있도록요.
발행: 2024년 6월